시대의 혜안 無等이 광주·전남의 길을 묻다<3> 박선홍 이사장
페이지 정보
본문
“흔히 광주사람들을
급하고 대하기 까다롭다 한다
그러나 광주사람만큼
대의가 있으면 앞장서는 이들이 없다
국가와 민족, 도시 품격을 지켜야 하는
유사시에는 어떤 어려움도 무릅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이어진 수많은 희생도
품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내적 강점을 외지인들에
적절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선입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유화 이미지로 바꿀 필요가 있다
후대인을 위해서도 그렇다”
박선홍
1926년 생
광주효성청소년문화재단이사장
광주 민학회 이사장
전 조선대 이사장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의장
광주상공회의소 부회장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광주는 정의로운 역사와 멋스러운 문화를 간직한 ‘의향(義鄕)’이자 ‘예향(藝鄕)’이다. 광주를 보호하고 있는 무등산은 어머니의 품같은 산이며, 호남 예술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다”
박선홍 광주효성청소년문화재단 이사장은 광주에서 태어나 평생을 광주에서 살아온 광주토박이다. 광주에 대해 누구보다 잘알고 무등산을 깊이 사랑하는 ‘살아있는 광주의 박물관’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민학회라는 모임을 통해 사라져가는 옛 서민문학을 발굴하는데 앞장을 서기도 했다. 광주 상의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한바도 적지않다.
그에게 “광주와 무등산은 어떤 것인가”를 묻기위해 광주시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6층에 있는 광주효성청소년문화재단 사무실을 찾았다. 광주1백년 1, 2권 개정증보판에 이어 3편을 집필 중인 사무실에는 각종 향토 관련서적이 가득 쌓여있었다. 향사(鄕史)의 맥(脈), 광주시사(光州市史), 전남농요(農謠) 등등.
-광주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광주의 정체성’이라함은 어떤 것일까요.
"광주는 멋과 맛을 가진 고향이다. 국악과 공연, 연극과 음악이 있고 별미 요릿집 등 푸짐하고 다양한 먹거리가 즐비하다. 풍류를 알고 운동을 즐긴다. 개화기에 근대 문화를 선도한 지방의 유명도시라 할만 하다. 광주에는 일제 강점기와 전쟁, 개발독재와 민주화를 겪으면서 켜켜이 쌓인 수많은 사람들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곳이기도 하다. 한말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활동의 태생지이자 일제 때 학생독립운동의 산실이며 80년 5월 민주화 투쟁의 들머리에 서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고향이다. 광주처럼 의(義)와 예(藝) 어우러진 도시가 국내에는 드물다. 광주가 그동안 많이 희생했고 많이 아파왔던 만큼, 이제는 세계화를 지향하는 도시로 재정립돼야 한다. 전통과 역사를 담아내고 생산과 발전을 거듭하는 빛고을로 자리매김해야할 일이다."
-광주는 80년 5.18 등 현대사의 주요 길목에서 많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큰 희생을 했습니다. 앞으로 광주는 어떤 모습을 갖춰나가야 하겠습니까.
“타지역 사람들은 흔히 광주사람들을 성정이 급하고 대하기가 까다롭다고들 한다. 그러나 광주사람들만큼 명분이 서면 호응이 좋은 이들이 없고 대의가 있으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참여하는 이들이 없다. 광주사람들의 기질은 겉보기와 달리 온건하고 유순하다. 평소에는 그렇지만 국가와 민족, 도시의 품격을 지켜야 하는 유사시에는 그 어떤 어려움도 무릅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이어진 수많은 희생에 대해서도 어떤 보답을 바라서가 아니라 자존심, 자긍심, 품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그러한 내적 강점을 외지인들을 상대로 적절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의 선입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강한 이지미를 유화 이미지로 바꿀 필요가 있다. 당대인 뿐만 아니라 후대인을 위해서도 그렇다”
박 이사장은 광주의 역동적인 근현대사를 씨줄과 날줄로 가지런히 모양새를 갖추어 체계화 했다. 저서 ‘광주 1백년’을 통해서다. 제1권을 1994년 초판 발행한 이후 20여년만인 2012년 개정증보판을 내고 다시 2년 뒤인 2014년 후속작으로 2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올해 안으로 3권을 낼 예정이다.
-광주일백년 초판 발행 이후 개정증보판까지 내고 3권을 집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요.
“나는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광주의 옛 흔적이나 옛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 하나하나의 소중함과 애정 때문에 이들을 모으고 간직해왔다. 그것을 다시 지면에 옮긴 것이 ‘광주1백년’(1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권을 낸 뒤에 어딘지 허전한 빈자리와 아쉬움이 남았다. 1권의 내용은 구한말 개화기의 광주 생활상과 1920년대 이야기에 머물렀다. 광주의 속살을 다시 들여다보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재집필에 들어가 펴낸 것이 2권이다. 2권에는 ‘광주의 멋과 풍류’, ‘공연과 영화’에 관련된 숨겨진 일화, 광주의 별미와 요릿집 등, 광주농공은행과 광주지방금융조합, 호남은행, 광주은행 등 금융권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들을 내는데 향토사학자들의 정성어린 협조가 지대했다. 그들의 협조로 광주와 관련된 귀한 자료들이 햇빛을 보게됐다. 앞으로도 우리 지역의 향토사료들을 찾아 이들 다듬고 가꾸어나가는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주제넘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향토정신의 도도한 정통성과 문화자산의 곳간으로서 뿐 아니라 ‘광주학(光州學)’을 여는 구심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박 이사장에게 광주가 가슴이라면 ‘무등산’은 외경(畏敬)스러운 존재다. 광주1백년에 앞서 이미 20여년 전인 1976년 ‘무등산’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무등산 기슭 곳곳에 살아 숨쉬는 전설과 경관을 바탕으로 무등산의 유래를 더듬은 저서이다. 이같은 ‘무등산’발간은 무등산 보호와 무등산 공유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무등산은 광주를 상징합니다. 저서에서 밝혔지만 무등산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해주십시요. #그림1오른쪽#
"무등산은 우리 시가문학에 빛나는 예향의 진산이며 항일의병과 학생독립운동, 20세기를 밝힌 광주민중항쟁의 본산이다. 시대의 고비마다 우리 곁에 우뚝 서서 역사의 아픔을 딛고 억겁의 지축을 지키며 추호의 흔들림도 물러섬도 없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광주의 산이다. 무등산은 1972년 도립공원 지정에 이어 2012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고 서석대와 입석대 등 주상절리대와 너덜겅 등이 천연기념물 지정 및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로 길이 지켜야할 소중한 산으로 자리잡았다. 무등산은 훼손과 오염, 무질서와 난개발로부터 시민 모두가 힘을 합쳐 지켜낸 우리나라 환경보전운동사의 빛나는 금자탑이다. 광주시민의 무등산 사랑운동은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의 전범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향토사 발굴 뿐아니라 보존에도 남다른 관심과 깊은 애정을 쏟아왔습니다. 광주가 진정한 ‘예향(藝鄕)’으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광주에는 멋이 있고 맛이 있다. 호남사람들은 예부터 한(恨)이 많았다. 그 한을 끈끈하고 질긴 흥겨움으로 풀어내면서 쓰라림을 달래곤 했다. 그 흥겨움은 소리와 가락으로 승화돼 국악의 본바탕으로 자리잡게한 원동력이 됐다. ‘광주1백년’ 제2권에 소개했듯이 1908년 8월 광주 최초의 국악경창대회가 열렸고 이듬해인 1909년 국악공연장이 세워졌다. 이응일, 김인수, 정인준 등이 주동이 되어 양명사(揚明社)를 설립했다. 지붕을 이엉으로 엮은 어설픈 가설극장이었지만 창극과 국악을 공연하면서 국악의 본산이 된 것이다. 일례이지만 광주에는 수많은 예(藝)의 맥(脈)이 있다. 그래서 광주를 ‘예향(藝鄕)’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향이라는 말을 구두로만 외칠게 아니라 진정한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 이를 보존하고 널리 이어가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과 함께 지자체 등 관련 기관도 예향을 상징하는 여러 유무형의 자료를 보존 및 발굴에 힘써야 할 일이다."
-광주는 문화수도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해줄 ‘아시아문화전당조성 특별법’이 국회에서 어렵게 처리됐습니다.
"80년 5월 신군부의 탄압에 맞선 민주항쟁의 무대였던 전남도청 일원에 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섰다. 이의 운영을 둘러싸고 정부와 광주의 입장이 다르다고 들었다. 광주가 예향이듯이 문화수도 조성은 당연하다. 관련법이 여러 곡절을 겪다가 처리됐다니 다행이다. 아시아문화전당과 함께 비엔날레의 안착, 기존의 국악진흥운동, 신창동 유적지 등 광주전남지역의 수많은 유적유물들의 발굴 및 보존과 이의 알림도 곁들여져야 한다.문화는 광범위하고 총괄적인 이야기다. 연극, 음악 분야만 문화가 아니다."
-민학회 회장으로 선구적인 문화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민학회는 우리의 옛 서민 문화와 풍속을 찾아내고 연구하는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처음 시작됐고 지방에서는 ‘광주 민학회’가 처음이다. 문화현장 답사를 처음으로 제안해 실시했고 90년대 후반에 개최했던 ‘욕’대회에 대한 호응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일제 시대 이전에만 해도 매년 개천절에 무등산 천제단에서 천제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 있었다. 일제가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이를 중단시켰는데 해방 뒤 의재 허백련 선생이 되살려 연진회와 함께 매년 제사를 지냈다. 의재 선생이 작고한 이후 행사가 소홀해졌는데 민학회가 나서서 광주의 원로들에게 부탁해 행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지역민과 지역발전을 위한 조언이나 제언을 말씀해준다면.
"광주·전남지역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자랑스러운 지역이다. 또한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희생을 감수하고도 어떤 댓가를 바라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환경 좋고 청정하며 유서깊은 교육의 중심지라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다. 이런 여러 좋은 점을 살려 더 나아져야 한다. 사고도 넓어져야 하고 인식도 새로운 틀로 다듬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얽매이기 보다는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세로 우리 자신을 다듬을 때 우리나라의 중심도시, 나아가 세계인이 괄목하는 지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담=김영태 논설실장 사진=임정옥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이전글[新명인열전]‘광주 1백년’ 쓴 구순의 향토사학자… “애향심으로 광주 지켜” 22.01.11
- 다음글84세 김정옥 할머니, 남부대에서 명예학사 받아 22.01.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