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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과 박선홍 선생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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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59회 작성일 22-03-3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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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과 박선홍 선생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2022년 03월 28일(월)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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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어머니 무등산! 광주의 진산(鎭山)이자 수호신이다. 우리 광주 사람들은 무등산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거기서 우람하고 웅장한 산기운을 받아들이며,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 광주를 떠나 외지에서 사는 나는 가끔은 무등산을 잊고 살아갈 때도 있다. 그래서야 되겠는가. 그러던 중 우연히 책장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무등산의 유래·전설과 경관’이라는 부제의 ‘無等山’(2008, 다지리), 박선홍(朴선洪: 1926~2017) 선생이 저술한 책이다.

박선홍 선생은 토박이 광주 태생으로 92세의 노령에 이르도록 오로지 무등산만 사랑하고 아끼고 보듬고 살아가셨던 분이다. 1976년 ‘무등산’이라는 이름의 책을 출판한 이래 무려 일곱 번이나 수정·가필하여 2008년판으로 완성한 책이 나왔으니 선생의 무등산에 대한 끈기 있는 애정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책의 표지에 “무등산신, 예로부터 이 고장 불교 신앙의 중심지로서, 도교와 성리학의 보금자리로서, 조선 가사문학의 산실로서, 또 장렬했던 구국열사들의 발자취가 역력한 역사의 보고로서, 무등산은 우리 마음의 양식이며 희망이며 빛을 뿜어내는 광주의 진산이다. 우리의 영원한 모성이며 마음의 고향인 무등산, 이마에 잔설이 빛나는 그 인자하면서도 지엄하신 눈길을 우러러 우리는 경건하게 옷깃을 여민다.”라는 찬사가 바로 선생의 무등산 사랑의 징표였다.

국립공원 무등산, 책의 서문에 “무등산은 예향 광주의 진산이며 또 항일 의병운동, 20세기를 밝힌 빛나는 광주민주항쟁의 본산으로서 지금도 우리 곁에 우뚝 서있다. 시대의 고비마다 역사의 아픔을 딛고 억겁의 지축을 지키며 추호의 흔들림도 물러섬도 없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라고 말한 무등산의 평가는 읽을수록 우리를 신나게 해 주고 용기를 잃지 않게 해 준다.

이런 무등산에서 우리는 정의를 위해 굽힘 없이 저항했던 역사의 숨결을 읽을 수 있고, 새로운 역사 창조의 밑거름을 발견할 수 있다. 무등산의 정기로 태어나 역사를 빛낸 충장공 김덕령 장군, 충무공 정충신 장군 두 분만 들어도 무등산은 나라를 지켜낸 의혼과 충의의 모체였음을 알게 해 주고,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등 학자와 의병장의 넋에서 조선의 성리학과 애국심의 산실임도 가르쳐 주고 있다. 척양척왜의 동학정신과 위정척사의 의병운동에서 새 역사를 열어가던 위대한 민족정신을 배태한 곳이 무등산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책을 읽으면서 박선홍 선생의 무등산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높고 넓었음을 알 수 있으니, 선생이 기록한 무등산의 고갯길 한 편만 읽어보자. 잣고개·무진고성·장불재·중머리재·바람재·늦재·너릿재·꾀재·삼밭실·꼬막재·한품잇재 등등 우리가 가보지도 못한 재 이름만 보아도 얼마나 치밀하게 무등산을 답사하고 살펴보았던가를 알게 해준다. 무등산의 사우(祠宇)를 보자. 경렬사(정지 장군)·충장사(김덕령 장군)·운암서원(송제민)·충민사(전상의 장군)·국립 5·18묘지 등의 기록에서 파란만장한 무등의 역사도 알게 된다. 16세기 조선의 사림문화와 풍류문화가 함께 발전했던 보금자리 정자의 이름은 우리를 더욱 설레게 해준다. 와송정·독수정·소쇄원·면앙정·환벽당·식영정·송강정·취가정·수남학구당·풍암정사·삼괴정·명옥헌·한국가사문학관 등 찬란한 누정문화에 대한 상세한 내력의 설명은 풍부한 지식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고 있다.

선생이 열거한 무등산의 사찰은 불교문화가 얼마나 성대하게 펼쳐지고 있었던가도 알아볼 수 있다. 증심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규봉암·석불암·문빈정사·만연사 등의 이름이 나오고 그 위치와 유래까지 상세히 기록하여 절터와 유물 등도 모두 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무등산에 밝은 분이었는가. 이제는 모든 사찰이 폐허로 변했지만, 그 흔적과 유래를 알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증심사·약사사·원효사·규봉암 등 몇몇 사찰만 있다고 여겼던 현대인들에게 선생의 공적은 잊을 수 없다.

더구나 선생이 주도하여 1955년에 전남산악회를 만들어 무등산의 자연보호에 앞장서셨다. 1989년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를 만들고, 또 ‘무등산 사랑운동’을 시민운동으로 전개하여 아름다운 자연과 경관이 보존되게 했던 선생의 노고는 참으로 위대한 광주사랑의 정신이었다. 선생 가신 지 벌써 5년, 이제 광주시민들이 선생의 업적을 찬양하고 기리는 일에 모두가 함께 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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